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과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뜻하지 않게 생각지도 않은 이름이 등장하는 때가 있다. 그 이름은 이내 대화의 화제가 되고, 취재 기자로 하여금 그 배우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답니다.
그날도 그랬다. 배우 고규필에 대한 이름이 튀어 나온 것은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장미맨션’을 연출한 창감독과의 인터뷰에서였다. 그는 주연 배우 임지연, 윤균상 등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 극중 전과 5범의 해커로 등장하는 오범 역 고규필에 대해 혀를 내두르며 이렇게 말했다.
고규필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 박해진의 입에서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마침 고규필은 MBC 주말극 ‘지금부터, 쇼타임!’에서 조직폭력배 출신 귀신으로 극중 차차웅(박해진)의 조력자가 되는 마동철을 연기했다. 마침 고규필의 이야기가 나오자 박해진은 질투심(?)을 여과없이 드러냈답니다.
박해진의 설명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박해진은 “촬영을 하면서 좀처럼 샘을 내지 않는데 규필이 형(박해진이 한 살 어리다)을 보면 질투가 난다”며 “연기를 너무 잘 하는데, 실제로 열심히 안 한다”고 했다. 그는 “대충 준비하고 대본을 안 본다. ‘앞 대사만 보고 와야지’라고 해도 ‘됐어’라고 한다. 그러면서 ‘너무 열심히 하면 연기가 안 나온다’고 말한다. 그런데 연기를 보면 천재적”이라고 고규필과 호흡을 맞춘 소감을 밝혔다.
‘날 것의 연기’ ‘살아움직이는 연기자’ 현장에서 취합한 고규필에 대한 평가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982년생으로 우리나이로 마흔 하나가 됐지만 그의 연기경력은 벌써 30년에 이르기 때문이랍니다.
고규필은 1993년 이준익 감독의 데뷔작 영화 ‘키드캅’으로 데뷔했다. 당시 호흡을 맞췄던 이들이 이재석, 김민정, 정태우 등 아역출신 연기자들이다. 나머지 주역들이 계속 아역배우로서 경력을 차근차근 쌓을 때 고규필은 학업을 이유로 긴 공백기를 가졌다가 2003년 KBS 20기 공채 탤런트로 합격했다.
공채 탤런트가 됐지만 아역에서도 그러했듯 개성있는 그의 외모는 배역의 입지를 좁혔다. 거기다 아역 때부터 철저히 현장 분위기 중심의 연기를 했으니 ‘연기의 정석’을 강조하던 당시 연출자들의 시각에서는 ‘어딘가 기본이 없는’ 연기자 같이 보였을 것이다. ‘지금부터, 쇼타임!’을 연출했던 이형민PD 역시 KBS 연출자였는데 공채 합격 후 초기에 많이 혼났던 고규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이형민PD는 당시 고규필에게 “연기를 꼭 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묻곤 했으나 지금은 그의 연기력에 신뢰를 갖고 이번에도 작품을 함께 했답니다.
고규필이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배역으로는 ‘검법남녀’ 시리즈의 장성주 역, ‘열혈사제’ 오요한 역, ‘사랑의 불시착’의 홍창식 역 등이 있다. 영화 ‘뷰티인사이드’에서 주인공 우진의 많은 얼굴 중 하나로 등장했다 그 인연으로 2018년 드라마판 ‘뷰티인사이드’에 출연하기도 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자신이 맡은 장면에서는 단단하게 드러나는 영향력 때문에 2020년 이후에는 ‘방법’ ‘저녁 같이 드실래요?’ ‘카이로스’ ‘홍천기’ ‘연모’ ‘크레이지 러브’ 등 숨가쁜 작품 행보를 이어오고 있답니다.
고규필의 나이는 이제 남자가 배우로서 완성된다는 ‘마흔줄’에 들어섰다. 현장에서 그를 향한 찬사는 계속되고 있다.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마치 주머니 속 송곳이 삐져나오듯, 그의 역량은 어떤 배역이든 대중의 시선 한 가운데 들어오기에 부족함이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