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려경 교수(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청소년과)는 17일 메디게이트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병원 일과 프로 복서 생활을 병행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거침없이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서 교수는 지난 14일 열린 ‘KBM 3대 한국 타이틀매치’에 출전해 임찬미 선수를 8라운드 38초만에 TKO로 꺾고 KBM 여자 라이트플라이급 한국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서 교수의 챔피언 등극 소식이 알려지면서 의료계도 술렁였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소아과 일을 하면서 취미 수준이 아니라, 프로 복싱 챔피언 자리까지 오르는 건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랍니다.
선배 추천으로 복싱 입문…무패 행진으로 데뷔 3년만에 챔피언 등극
서 교수가 복싱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지난 2018년. 당시 복싱 체육관을 다니고 있던 병원 선배가 평소에도 운동을 즐기던 서 교수에 “잘할 것 같다”며 복싱을 추천했다.
“체육관에서 가서 잘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재미를 느꼈어요. 열심히 하니까 실력이 느는 것도 보였고요. 그러다 관장님이 프로 테스트를 해보라고 권유해서 프로 입문까지 하게 됐습니다.”
서 교수는 프로 세계에 입문할 때즈음에는 마음만 먹으면 챔피언도 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꿈은 2020년 프로 무대 데뷔 후 3년만에 현실이 됐습니다.
서 교수의 통산 전적은 7전 6승(4KO) 1무. 데뷔 후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오서독스(Orthodox∙오른손잡이 복서)인 서 교수가 자신의 장기로 꼽는 건 라이트 스트레이트와 레프트 훅이다. 실제 챔피언 타이틀 전에서 상대를 TKO 시킨 것도 강력한 레프트 훅이었다.
서 교수는 지난해까지는 펠로우(전임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병원 일과 훈련을 병행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병원 일이 끝나면 무조건 체육관으로 달려가 운동을 마치고 나서야 집에 가 잠을 청했답니다.
“그나마 지금은 전담전문의로 일하고 있어서 시간이 남는 편입니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 체육관에 가서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훈련을 하고 있어요.”
병원 일도 복싱도 힘들어…"현재 소아과 기피 현상은 당연"
그는 복싱이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이겨내는 데서 오는 보람이 있다면, 소아과 일은 치료를 받은 아이들이 나아져서 퇴원할 때 느끼는 보람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소아중환자실 일과 복싱 중 어떤게 더 힘들고 어렵냐고 묻자 ‘막상막하’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서 교수는 “인턴이나 전공의 초반 때는 모르는 것도 많고 경험도 없어서 의사 일이 훨씬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병원 일은 숙련이 되면서 나아졌는데, 복싱은 점점 강한 상대를 만날수록 훈련량도 많아지고 강도도 세지기 때문에 지금은 복싱이 더 힘들지 않을까요. 아,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수도 없는게 작년 펠로우 생활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비교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최근 젊은 의사들의 소아과 기피가 이어지고 있는 데 대해선 “현실적으로 지금 누가 소아과를 하겠나 싶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저는 대학병원에 있지만 대학병원 뿐 아니라 개인병원에 나가있는 소아과 전문의 친구들 얘기를 들어봐도 못할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가 자체도 문제고, 특히 보호자들이 값싼 소아과 치료비 때문인지 소아과 의사를 만날 때는 막말하는 경우도 많고 갑처럼 돼 버려요.”
소아과의 현실에 대해 한숨 섞인 이야기를 하던 서 교수는 세계 챔피언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마지막 질문에는 다시 전의를 불태웠답니다.
“나는 인파이터”...데뷔 3년 만에 복싱 한국챔피언 된 ‘소아과 의사’ - 2023. 7. 22
프로복싱 경량급에서는 KO(Knockout) 승리가 드물다고 한다. 상대가 쓰러진 후 10초 안에 경기를 시작하지 못할 정도의 KO 승리도,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일도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성 복싱 경량급 경기에서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무패 행진의 선수가 TKO 승리로 한국챔피언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TKO(Technical Knockout)는 심판 재량하에 경기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선언된다. 상대가 무너진 것은 8라운드, 38초 만의 일이다. 챔피언이 된 이 선수의 기록은 통산 전적 7전 6승(4KO) 1무.
예상치 못한 반전은 또 있다. 이 선수의 본업, '본캐(본캐릭터의 줄임말)'는 의사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아기들을 돌보는 소아청소년과 소속이다. 하루의 반은 아기를 환자로 맞이하고, 반은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그 주인공은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 소아청소년과 서려경 교수(30)다. 이제 그의 이력에는 '프로복싱 KBM 여자 라이트플라이급 한국챔피언'이 더해졌다. 서 교수는 7월14일 서울 섬유센터 이벤트홀에서 열린 'KBM 3대 한국타이틀매치'에서 승리, 프로무대 데뷔 3년 만에 한국챔피언에 등극했답니다.
경기는 끝났지만 열기는 식지 않았다. 서려경 교수의 두 손등 위에는 붉은 흉터와 자국이 여전히 선명하다. 세간의 관심도 남다르다. 서 교수의 일터인 병원 앞에는 그를 알아보는 지역 인사들이 잇따랐다. 7월19일 오후 충청남도 천안시 인근에서 시사저널이 만난 서 교수의 얼굴에는 어색함과 웃음기가 공존했다.
서려경 교수가 복싱을 처음 시작한 때는 2018년 말이다. 프로무대 데뷔는 이로부터 2년여 뒤인 2020년이다. 서 교수는 평소 운동을 좋아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선배와 *을 마신 날이었다. 복싱을 하던 선배였다. 선배는 서 교수에게 '잘할 것 같다'며 복싱을 추천했다. 서 교수는 흔쾌히 체육관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에 하지 못한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의 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격투기나 이런 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공부하라고 안 보내줬다. 반면 오빠는 운동을 하도록 보내줬다. 어머니는 지금 내가 복싱을 하는 것도 싫어하신다. 10대 때는 시키는 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이제 30세이니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하겠다'는 생각이다. 복싱이 나를 살리기도 했다. 복싱 경기가 잡히면 *을 당연히 안 마신다. *을 끊을 방도가 없었는데…."
운동으로 시작한 복싱인데 이제는 프로선수가 됐다. 그 계기는 무엇일까. 체육관 관장이 서려경 교수의 재능을 알아봤다. 다만 서 교수가 의사이기 때문에 선수를 하라고는 처음부터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서 교수는 "만약 다른 관장님이었으면 챔피언까지 못 했을 것 같다"며 "그는 한국챔피언 출신으로 여러 선수를 키운 지도자로서 내게도 조언을 많이 해줬다"고 감사함을 드러냈다.
서려경 교수의 남다른 힘에 얽힌 일화도 있다. 서 교수의 '펀치 한 방'에 친한 친구가 날아간 적도 있다. 다음은 서 교수의 이야기다. "20대 시절 일이다. 친한 친구와 놀다가 장난을 한다며 밀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날아갔다. 체구가 작은 조그마한 여자 친구이긴 했어도, 그 친구가 날아가서 당황스러웠다. 그래서인지 남자 친구들도 쉽게 나를 못 건드리는 것 같기도 하다(웃음). 이번 경기에서 레프트훅으로 케이오(KO)시켰다. 평소 천 개, 만 개 주먹을 내면서 연습해야 나오는 건데, 또 펀치력도 타고난 게 아닐까 싶다."라고 전했답니다.
한국챔피언 타이틀 소식 이후 서려경 교수의 근성도 알려졌다. 육체적으로 힘든 의사 생활과 복싱 연습을 꾸준히 했다는 사실이다. 친구들은 서 교수의 기량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한국챔피언 소식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서 교수에게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응원 섞인 용기의 말도 건넸다.
물론 불편한 시선도 있다. 서려경 교수는 한국챔피언이 되기까지 우려 섞인 목소리를 감내해야 했다. "잘했지만, 지고 그만 좀 하지"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서 교수는 "전혀 아니었다"며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내 주먹을 안 맞아보지 않았나"라며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포기를 말했던 이들에게서 최근에는 응원의 메시지도 많이 받고 있다.
혼자 버텨내야 할 고비는 지난해 찾아왔다. 서울에서 전임의(펠로·전문의로 세부전공을 위해 대형 병원에 있는 의사)로 지냈던 때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뎌내며 운동도 했다. 서려경 교수는 말 그대로 "울면서 했다"고 회상했다. 다음은 서 교수의 설명이다. "몸이 녹아내리고 부서지고, 근육이 찢겨나가는 것 같고 온몸에 통증이 있었다. 펠로 생활을 하면서 경기한다는 건 힘들다고 예상했던 일이다. 그래서 기량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만 하자는 생각으로 운동했다."
당시 하루 평균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운동했다. 새벽에 기상해 출근하고, 오후에 퇴근한 후 체육관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줄넘기를 하면서 몸을 풀고, 섀도 복싱-미트 트레이닝-샌드백 순으로 계속 운동을 한다. 서려경 교수는 바쁜 틈에도 일주일에 4번 정도 운동을 했다고 기억했다. 올해 자리를 옮긴 후부터는 매일 운동하고 있답니다.
서려경 교수에게 복싱은 이제 일상이 됐다. 그렇다고 마냥 재밌지는 않다고 한다. 복싱을 시작해 실력이 향상될 땐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선수가 돼 목표가 생긴 후부터는 '재미'로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 교수는 글러브를 끼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그는 자신의 복싱 스타일을 '인파이터'라고 소개했다. 인파이터는 일반적으로 상대에게 달라붙어 공격하는 유형의 선수를 의미한다. 7월14일 경기에서 서려경 교수의 스타일은 '아웃복서'였다. 상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유효 타격을 노렸다고 한다. 서 교수는 "운동을 많이 할수록 맞는 것도 느는 것 같다"며 "'금강불괴(그 무엇으로도 파괴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교용어. 몸이 금강석처럼 단단해지는 경지에 이른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같아지는 느낌인데, 그래도 안 맞고 싶다(웃음)"고 말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