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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 프로필 국회의원 학력 고향 나이

날리호 2021. 7. 8. 00:40

그는 이장에서 시작해 군수를 거친 뒤에 행정자치부 장관과 경상남도 도지사 그리고 국회의원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랍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돼 친노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랍니다.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신분으로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한 뒤에, 53.5프로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해 예전에는 민주당의 대선 주자감으로 거론되던 사람이었답니다. 그렇지만 2012년 18대 대선 경선에 출마하려고 경남지사직을 정말로 내던지는 행위를 저지른 것과 아울러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문재인 당시 후보와 경쟁할 때 보인 그의 행보가 두 사람 간의 아름다운 경쟁을 기대했던 친노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큰 실망을 사면서 정치적 고난기를 겪어야 했답니다.


그 뒤에 지난 2014년 7.30 재보선에서 도전했다가 떨어졌던 곳인 경기도 김포시에서 지난 20대 총선 때 재도전해 당선되면서 가까스로 재기의 기회를 잡았답니다. 이런 이유 덕에 대한민국의 제20대 국회의원이 되었답니다. 또한, 21대 총선에서 당의 요청으로 양산시 을 선거구에 도전하여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답니다.

그는 지난 1959년 4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남해군(고향 출생지)에서 가난한 어부의 5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해외로 돈벌이를 나간 형들을 대신해서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는 등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답니다.

남해종합고등학교(지금의 남해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국민대학교 어문계열에 합격했으나 등록금 문제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으며, 이 후 경북전문대학교 행정과를 거친 뒤에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해 졸업한답니다. 대학 시절 동생 김두수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답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에 고향으로 알려진 남해로 낙향해 민중의당 후보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경남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5%도 채 되지 않는 득표율로 민주정의당 박희태 후보에 밀려 낙선했답니다. 이후에는 고향 이어리의 이장 선거에 출마했으며 당선되면서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기반을 쌓아나갔답니다.

 

이후에 <남해신문>이라는 지역 신문사를 설립해 운영하며 신망을 쌓았답니다. 지난 1995년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남해군수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답니다. 당시 나이가 만 36세로 전국 최연소 지방자치단체장이었던 것이며, 지금까지도 선거로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최연소 기록이 깨지지 않는 중이랍니다. 이후에 지난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국민승리21의 지원을 받게되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에 성공하여 재선 남해군수를 지냈답니다.